한재의 맑은 물과 진흙은 한재 미나리만의 특징을 만드는 필수 요소다. 우리보다 3년 먼저 한재를 찾은 셰프 강레오도 김성기를 만난 이야기를 농민신문에 기고했다. 강레오가 기억하는 미나리밭은 물이 가득 채워졌고, 진흙과 거머리가 있던 곳이다. 반면 한재 미나리밭은 보통 운동화를 신어도 빠지지 않을 만큼만 물이 조금 차 있었다. 보통은 미나리의 줄기가 꺾이지 않도록 물을 채워 키우는데, 한재의 땅은 모래가 많아서 밭에 물을 채울 수 없다. 그래서 미나리 줄기가 서로를 지탱하도록 빽빽하게 키운다. 그 결과 물에 사는 보통 미나리 줄기는 속이 빈 반면 한재 미나리 줄기는 속이 꽉 차 있다. 우리가 본 미나리 하우스도 그랬다. 김성기는 그 앞에서 낫을 들고 능숙하게 미나리 몇 뭉치를 베고 송시영은 그 장면을 찍었다. 미나리는 인간사 까짓 게 다 무슨 일이냐는 듯 숨 막힐 정도로 싱싱했다. 

큰 욕심을 부린다

김성기는 사려 깊고 친절했다. 조금 길다 싶은 이야기는 김성기 버전의 환대 인사였다. 김성기는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날렵하게 차를 몰았다. 다음 목적지는 미나리 작업장. 마을의 여성들이 자기 앞의 삶의 무게처럼 각자의 미나리를 쌓아둔 채 다듬고 있었다. 여성들은 사진가의 카메라를 보자 얼굴 나오는 거 아니냐며 조금 동요했다. 송시영은 정중히 얼굴이 안 나온다고 말씀드리고 사진을 촬영했다. 사진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신 작업자에게 전화가 왔다. 벨소리는 퍼프 대디의 아 윌 비 미싱 유. 퍼프 대디의 노래 사이로 여성들이 묵묵히 미나리를 다듬었다.

한재 미나리의 재배에서 출고까지에 이르는 공정은 100% 수작업이다. 한재 미나리의 경쟁력이고 가격이 높은 이유다. 미나리는 진흙에서 자라기 때문에 사람이 낫을 휘둘러 벨 수밖에 없다. 베어 온 미나리는 언덕 위에 있는 작업장으로 이동한다. 여기서 미나리를 씻고, 먹기 좋지 않은 잔 잎들을 떼어내고, 한 번에 먹기 좋은 양을 개량해 담는 작업이 한 번에 이루어진다. 모두 사람의 일이다. 동시에 산지에서 바로 상품화가 이루어진다는 장점이 생긴다. 한재 미나리 특유의 맛이 있는데 별도 후처리 없이 바로 받아서 판매할 수 있으니 경쟁력이 커진다. 한재 미나리는 땅의 승리이고 맛의 승리인 동시에 경영기획의 승리이기도 하다.

친절하고 수다스러운 김성기가 한재 미나리의 마에스트로다. 이 모든 아이디어는 그로부터 왔다. 원래 청도는 감과 밤이 유명했고, 평지에서는 쌀 등의 곡물을 재배했다. 김성기는 그렇게 하면 쌀농사로 경쟁력이 없을 것 같다는 결론을 냈다. 그는 수익성이 더 높은 비즈니스를 찾다 유기농 미나리에 정착했다. 처음에는 근교의 대도시인 대구에 조금씩 납품하다 백화점 바이어 눈에 띈 게 벌써 15년 전이다. 이제는 경남과 경북을 넘어 전국 단위의 특산물이 됐다. 미나리를 다듬어 소포장으로 낸다는 발상도 김성기가 했다.

한재 미나리는 가격정책 면에서도 남다르다. 한재 미나리의 가격은 언제 어디서든 고정되어 있다. 1kg에 1만원을 유지하다가 올해 물류비 등을 이유로 12000원으로 인상했다. 작황 따라 가격이 바뀌는 다른 농산물에 비하면 해마다 수익률이 낮을 수 있으나 김성기의 뜻은 명확하다. 큰 욕심을 부리자. 일희일비하지 말고 길게 가자는 뜻이다. 한재 미나리는 11월부터 6월까지의 생산철 중 1월은 쉰다. 추워서이기도 하고, 그동안은 다른 미나리 생산지역이 팔면 된다는 논리 때문이기도 하다. 김성기는 확실히 남다른 세계관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 박진도이~" 김성기는 미나리 마을 사람들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었다. 다음 취재지로 예정된 박진동 농부의 식당으로 간다고 하자 그는 이응 받침을 빼는 강력한 경북 억양으로 말했다. 김성기는 박진동 농부는 대구에서 검도 도장을 하다 여의치 않아 청도로 와서 미나리 농사를 짓는다는 사연을 빠르게 전하고 우리를 미나리 작업장 앞에 내려준 후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졌다. 약속 장소는 미나리 작업장이 아니라 박진동 농부가 운영하는 식당이라 우리는 새로 이동했다.

미나리의 비즈니스 모델

박진동 농부가 운영하는 식당은 농가와 조금 떨어진 큰 길가에 있었다. 큰 길가라 해도 왕복 2차선의 작은 도로다. 식당 이름이 아주 직관적이었다. 한재 농사꾼 박진동 한재 미나리 식당. 식당에 들어가자 박진동 농사꾼의 아내이신 여성 사장님께서 우리를 맞아 주었다. 박진동 님은 농사를 짓고 사장님은 식당을 운영한다고 했다.

미나리를 파는 식당은 한재 미나리가 낳은 파생 상품격 비즈니스 모델이다. 한재 미나리와 관련된 사업은 몇 가지로 나뉜다. 첫째. 미나리 재배를 해서 판매하는 사업. 둘째, 미나리 재배를 하는 한 켠에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비닐하우스를 운영하며 자리를 빌려주는 사업. 이런 경우 고기를 팔 수 없기 때문에 고기나 김치 등을 손님이 사 와야 한다. 셋째. 미나리 농가에서 식당을 따로 운영하는 경우. 넷째. 이 동네에서 미나리 납품만 받고 식당을 운영하는 경우. 박진동 한재 미나리 식당은 미나리 농가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미나리를 좀 더 넉넉하게 주는 편이라고 했다. 미나리는 말 그대로 밭에서 바로 따온 듯 특유의 향을 풍겼다. 그 향은 돼지기름에 익혀도 사라지지 않은 채 부드럽게 코를 맴돌았다. 미나리는 물론 직접 담근다는 김치와 된장도 훌륭했다. 취재진 세 명이 고기 5인분을 홀린 듯 다 먹었다. 이제 와 말하면 1인분 더 먹고 볶음밥도 먹고 싶었다.

대도시와 오늘날의 미나리

청도 한재 미나리는 그 이후에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 싱싱함, 김성기의 강력한 자기만의 세계, 마을 곳곳에 붙어 있는 미나리 현수막. 한재 미나리는 대도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집에 가는 길에 본 어느 대형 마트에서는 청도 미나리 300g이 6천 원인데 포인트 할인을 쓰면 4천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산지에서 1kg에 12000원이니 크게 마진을 붙이지 않은 셈이다. 김성기와 청도 농민들의 방침 덕에 소비자가 가격을 계산하기 쉬워졌다. 좋은 일이다. 

청도 미나리는 맛뿐 아니라 앞으로의 삶에도 교훈을 준다. 일의 모든 영역에서 사람의 역할이 줄어들고, 전국의 지자체가 인구 소멸을 걱정하는 시대다. 그 사이에서 벽촌에 가까운 청도의 어느 마을이 다른 것도 아닌 미나리로 전국 단위의 인지도를 얻었다. 중요한 건 시대가 아니라 시대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노력 아닐까. 그 증거 중 하나는 김성기의 손이었다. 그의 손톱과 손가락 마디마다 흙이 껴 있었다. 평생 진흙을 만진 흔적이었다.

나는 이제 깨끗하고 싱싱한 미나리를 먹을 때마다 손들을 떠올린다. 퍼프 대디 노래 벨소리를 들으며 미나리를 씻고 다듬던 여성의 손, 김성기의 손, 우리 눈에 안 보일 뿐 어딘가에서 분명히 자기 역할을 해서 우리 눈 앞의 깨끗한 미나리를 가져다 준 사람들의 손들을. 그 손을 생각하면 또 미나리를 먹고 싶어진다. 돼지고기를 굽고 생긴 기름에 지져 먹고, 새우깡 길이로 썰어서 전으로 부쳐 먹고, 앤초비와 올리브오일을 둘둘 볶아 파스타로 먹고, 간장으로 간한 멸치 국물을 살살 끓이며 얇게 썬 고기와 함께 샤브샤브로 데쳐 먹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