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븐 치킨이 구조적으로 덜 바삭거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성공은 당연한 일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온다. 성공의 뿌리는 꾸준한 실험이다. 보통 튀김 치킨은 배터(batter)라 부르는 반죽을 닭에 묻혀서 바삭한 맛을 만든다. 물과 반죽 가루를 섞어 묻히는 방식, 가루만 쓰는 방식 등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굽네치킨 역시 바삭한 맛을 만들기 위해 배터를 추가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오븐 아래로 배터들이 다 떨어져 내려갔기 때문이었다. 3년간의 실험 끝에 오븐에 둬도 떨어지지 않는 반죽 가루의 종류와 반죽의 재료 비중 데이터가 확보됐다. 그 결과가 이날 보여줄 오븐 바사삭, 굽네치킨의 신기술을 시연하는 자리였다.
 
프랜차이즈 음식은 규모의 경제가 실현될수록 유리하다. 굽네치킨 조리 과정을 보자 그 사실이 실감났다. 굽네치킨으로 들어오는 닭은 이미 기본 염지와 양념이 된 채 비닐 팩에 담겨 들어온다. 공장에서 그렇게 만들어 바로 현장 조리가 가능하도록 보낸다. 현장에서는 닭다리와 닭날개가 두개씩 있는지 등을 확인하고, 껍질을 잘라내고, 살이 큰 부분을 한번 썰어주는 식으로 손질을 끝낸다. 고기를 다 준비하면 큰 쇠 보울에 반죽 가루를 물에 넣고 반죽을 만든다. 반죽이 끝나면 보울에 닭을 쏟고 반죽을 골고루 묻힌다.

이 모든 걸 시연하는 김현경의 솜씨는 실로 능숙했다. 요리가 몸에 밴 사람의 조건 중 하나는 즉시 정리하기다. 요리에 서툰 사람이 메뉴 하나를 완성하면 부엌 조리대의 풍경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처럼 엉망이 된다. 연구원이 쓰는 조리대는 내내 깨끗했고, 그는 숙련된 트레킹 가이드처럼 행동과 설명을 멈춤 없이 동시에 진행했다. 반죽을 묻힌 닭을 고깃집 석쇠처럼 생긴 오븐용 그리드에 하나씩 담았다. 오븐에 넣고 구울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 위로 연구원이 비밀의 가루를 뿌렸다. 바삭한 맛을 끌어올리기 위한 현미가루였다.

지금 나만 할 수 있는 것

오븐에 넣고 치킨을 기다리며 김현경의 설명을 들었다. 바사삭 치킨을 만든 이유는 철저한 시장 논리였다. 프라이드 치킨이 만들 수 있는 바삭한 맛이 분명 있고, 바삭한 정도를 점수로 매긴다면 굽네치킨 같은 구움 치킨은 보통 프라이드 치킨을 넘을 수 없다. GN푸드가 전례 없던 일에 도전해야 했던 이유였다. 자신이 가진 자원과 설비를 활용해 조금 더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오븐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요즘 치킨 프랜차이즈의 경향 중 하나는 사이드 디시 개발이다. 두 명이 가서 냉면 두 그릇에 만두 하나를 추가하듯, 치킨도 두 사람이 시켜먹으면서 사이드 디시를 하나 시키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 웨지감자, 치즈스틱, 도넛의 일종인 치즈볼 등은 튀김 계열 요리라는 공통점이 있다. 프랜차이즈 식당의 주방은 전문 식당 주방에 비해 설비와 요리사의 수준 차이가 난다. 그러다 보니 튀김기를 공유할 수 있는 튀김계 사이드메뉴가 생긴다. 굽네는 오븐계 사이드메뉴인 에그타르트로 응수한다. 각자의 치킨 프랜차이즈는 각자의 자원을 총동원한 총력전을 하고 있다.

대치킨시대, 굽네의 대답

오븐 바사삭 치킨은 굽네가 지향하는 바가 분명히 느껴지는 치킨이었다. 확실히 바삭했다. 물 반죽을 묻혀 구운 보람이 있었다. 김현경이 연구한 대로 열기가 직접 가지 않는 닭 아랫부분까지 물 반죽이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었다(물 반죽 가루를 이루는 요소는 비밀이다). 바삭거리는 촉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붙어 있는 현미가루도 자기의 역할을 했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요소가 붙어 바삭바삭한데 기름기가 덜한 모순을 충족시키는 치킨이 완성되었다. 시장 반응은 모를 일이고 개인의 기호에도 차이가 있다. 그러나 오븐 바사삭이 튀김계 치킨이 닿을 수 없는 새로운 치킨의 경지임은 확실한 것 같았다.
 
치킨은 한국을 대표하는 배달 음식이 되었다. 그 이유에 대한 해석이 많으나 나는 시대가 치킨을 불러낸 거라고 생각한다. 손님에게는 배달 메뉴 중 단위 가격당 단백질량이 가장 높고 치우기 가장 편한 게 치킨이다. 프랜차이즈 사장님에게는 조리 효율이 가장 높은 음식이 치킨이다. 치킨은 패키징도 간소하고 무엇보다 치킨은 국물이 없다. 음식 배달은 2륜차로 이루어지므로 국물은 사업자와 배달자 모두에게 리스크다. 손님과 사장님은 본능적으로 함께 최적화된 거래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양념치킨 개발 30여년만에 대치킨시대가 열린 이유다.

식품업계는 귀여운 이름이나 눈에 잘 띄는 광고로 인식되기도 한다. '굽네치킨 오븐 바사삭'이란 이름만 봐도 그렇다. 이 이름에서 3년의 연구 기간과 냉정한 현실 인식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 그러나 모든 성공엔 이유가 있고 그 이유 뒤에는 상상 이상으로 섬세한 디테일이 있다. 그 디테일을 일일이 내세우며 멋을 부리는 업태나 상품이나 ‘브랜드’도 있지만, 내세우지 않는다고 디테일이 없는 건 아니다. 그건 굽네치킨 뿐 아니라 수많은 대중지향 대형 상품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굽네치킨의 최신 광고 문구가 달리 보인다. 일견 유치해 보이나 자신들에게는 진지한 선언이었을 것이다.

나는 구울레옹

내 역사는 튀길레옹과의 전투의 역사였다

화산처럼 뜨거웠던 볼케이노 전투와

매운맛을 보여줬던 고바삭 전투까지

어떤 이는 나의 전투를

구 워(war) 라고 불렀고

또 어떤 이는 나의 전투를

매 워(war) 라고 불렀다

나 구울레옹

앞으로도, 튀기지 않고 “꾸울래옹”

내 오븐에 불가능이란 없다

구워서 불맛정복

구울레옹 불금치킨

불금전투를 향해 퐈이야

(나레이션 차승원)

마지막 퍼즐

프랜차이즈 식품 연구실의 마지막 고민은 '연구실의 맛이 현장에 전달될까'다. 현장 점주님들도 김현경이 보여준 정도의 맛 완성도를 만들 수 있을까. 궁금해서 원고를 마감하는 날 밤 오븐 바사삭을 시켜 보았다. 키보드를 두들기는 동안 음식이 도착했다. 상자를 열자 보이는 치킨은 내가 연구실에서 먹었던 치킨과 큰 차이가 없었다. 날개를 들고 한 입 먹어 보았다. 맛도 비슷했다. ‘노하우를 매뉴얼화하고 전파해서 맛을 복사하듯 표준화하는 게 가능하구나’ 싶었다. 놀라워하며 한 마리를 다 먹었다.

“평소에는 중식과 햄버거를 즐기지만, 한식 중에는 유독 들깨칼국수를 좋아합니다. 시래밥상을 처음 찾은 것도 들깨 시래기탕 때문이었어요.” 패션 브랜드 '더 뮤지엄 비지터'의 박문수 디렉터는 자신의 압구정동 사무실 근처에 있는 한식 전문점 ‘시래밥상’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이 동네에서 한식 잘하는 집 찾기 은근히 힘들어요. 시래밥상의 모든 메뉴는 점심시간에 급히 먹어도 더부룩하지 않고, 재료도 늘 신선합니다. 치즈와 밀가루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집밥 디톡스’ 같아요.”

시래밥상의 식사 메뉴는 총 4개. 그 중 박문수 디렉터는 어떤 선택을 할까? “혼자 가신다면 들깨시래기탕을, 한 명 더 간다면 고등어조림을 추가로 시켜주세요. 말 그대로 밥도둑입니다.” 물론 시래밥상은 배달로도 즐길 수 있다. “집에서 혼자 식사하시는 분들께는 윤석철 트리오의 ‘젠틀 윈드gentle wind’를 추천해요. 시래밥상에 갈 때면 서울 근교로 나가 평상 마룻바닥 앉아 산뜻한 바람을 맞으며 밥을 먹는 장면이 떠오르거든요.” 애플 뮤직 화면에서 재생을 누르자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시래밥상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34길 11

박문수 디렉터 @visitor_parkmoonsu

글, 사진 ㅣ 에디터 주현욱 @hyeonuk_joo

왼팔에는 문신이 많으나 등에는 문신이 없는 야누스 같은 에디터. 사실 아이유는 존경의 대상이지 아주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요즘 듣는 노래는 변진섭의 ‘숙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