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일지 #23🍜 면의 요정이 보내는 편지🧚‍♀️

반죽이 강처럼 흐르는 장엄한 현장 속으로🌊

2022.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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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기요의 공장 탐험

면의 요정이 보내는 편지

일시 ㅣ 화창했던 5월 말 어느 오후

장소 ㅣ 충청북도 음성군 풀무원 공장

탐험 난이도 ㅣ 3.7/5.0 ➡ 면이 익어가는 동안 요기레터 팀도 익어갔다

획득 물품 ㅣ 풀무원 로스팅 짜장면 여러 박스

당신에게

여러분 안녕. 나는 면이다. 오늘은 내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 살면서 면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날이 얼마나 있겠나.

나는 면 중 건면이다. 면계 친구들은 모두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우리는 모두 반죽으로부터 태어난다. 곡물 가루와 전분과 물을 섞고 열심히 주물러주면 반죽이 된다. 그 반죽을 얇고 길게 자른 게 면이다. 바로 익혀 먹는 친구들은 생면이다. 촉촉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한다. 우리는 오래간다. 우리는 익혀서 딱딱하고, 끓으면 다시 부드러워진다. 오래가려면 굳혀야 한다. 굳히는 방법에 따라 친구들과 우리의 길이 갈라진다. 기름에 튀겨지는 친구들은 유탕면이다. 당신이 평소 즐기는 대부분의 라면이 여기 속한다. 우리는 다르다. 열풍으로 말리거든. 그래서 우리가 건면이다. 한국의 건면도 고향이 조금씩 다르다. 우리의 고향은 충북 음성이다. 음성 풀무원 건면 공장.

우리는 풀무원 음성공장 비밀의 장소에서 태어난다. 우리를 이루는 가루들이 사일로에 섞인다. 나를 이루는 주된 가루는 소맥분과 감자 전분 등으로 다양하다. 이 모든 가루들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독일 등 상황에 따라 다른 곳에서 온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가루들이 물과 섞여 반죽되어 거대한 반죽기로 들어간다. 집에서 파스타 해먹어 본 적 있나? 내가 만들어지는 기계는 가정용 파스타 기기의 원리와 거의 비슷하고 크기가 수천 배쯤 커진 거라 보면 된다. 반죽이 롤러들을 거치며 조금씩 면에 가까워진다. 처음엔 손가락 두께로 두껍던 반죽이 롤러들을 지나며 하드보드지 수준으로 얇아진다.

얇고 넓은 반죽을 어떻게 하면 면이 될까. 잘라야지. 그래서 반죽을 끝낸 내가 갈 마지막 관문은 반죽을 얇게 잘라주는 롤러다. 이 롤러를 지나야 나는 반죽에서 면으로 거듭난다. 하나 묻겠다. 반죽은 평평한데 왜 면은 꼬불꼬불할까? 튀길 때 꼬불해질까? 아니다. 그렇게 치면 감자튀김이 어떻게 일자겠나. 우리가 꼬불해지는 건 제면 과정에서부터다. 반죽이 들어가는 롤러가 있고 나가는 롤러가 있다. 그 두 개의 롤러의 속도 차이를 주면 우리의 모습이 꼬불꼬불해진다. 속도 차이를 통해 꼬불거리는 정도도 조절할 수 있다. 신기하지? 안 신기하다고? 다들 호기심이 별로 없구만. 아무튼 우리는 여기서 모습을 갖춘 후 어딘가로 떨어진다. 거기 뭐가 있냐구?

찌고 말리고 식고 또 한 번

우리가 태어나 세상 밖으로 나가는 면 공장은 아주 크다. 얼마나 큰지 말해줄 수는 없지만 굉장히 크다. 그 큰 곳을 지나며 우리는 가루였다가 반죽이었다가 면이 된다. 갓 만들어진 우리는 생면 파스타처럼 차갑고 싱싱한 면 상태다. 그 후 우리는 급히 한 번 쪄진다. 오래 보존하기 위해서다. 쪄진 우리는 열풍 지역을 지나며 물기를 날린다. 열풍 지역을 지나면 너무 뜨거워 다음 작업을 할 수 없다. 그러니 뜨거워진 우리 면들은 차가운 냉각 지역을 거친다. 그 과정을 거쳐 우리가 건면이 된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우리가 만들어지는 모습은 상당히 장엄하다. 생각해 보라. 거대한 압연 롤러들을 거치며 반죽들이 느린 강처럼 흐른다. 점차 얇아지는 반죽은 제면 롤러를 지나며 면의 모습을 갖춘 후 폭포수처럼 떨어진다. 떨어진 후에도 우리가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이 멈춤 없이 이어진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같은 거라도 틀어 둔다면 아주 잘 어울릴 것이다. 나도 기왕 보여주는 김에 시원하게 음악과 함께 영상으로 보여드리고 싶으나 세상엔 어른의 사정이 있다. 생산라인과 생산설비 자체가 모두 각 사의 고유한 노하우라 영상으로 보여줄 순 없다. 아쉬운 대로 음악이라도 틀어두시고 사진을 보며 상상하시길 바란다.

생산라인이 멈추지 않는 건 얼핏 보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세상에 당연한 일은 하나도 없으며 우리 공장의 가장 대단한 점은 아무 일도 없다는 점이다. 이렇게 흘러가게 하는 게 우리의 산파 풀무원 근무자들의 기술이다. 여러 변수가 단춧구멍만큼만 틀어져도 제면 설비 전체가 멈춘다. 모든 빵집은 매일 반죽이 조금씩 다르다. 공기 중 늘 수분이 함유되어 매일의 습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사정도 마찬가지다. 여기 다 말할 수 없는 모든 순간이 그 자체로 조금씩 다른 변수고, 생산 라인의 전문가들이 매일의 변수를 세밀히 통제하며 강물 같은 면발의 흐름을 만든다. 가루에서 면발이 된 우리는 또 다른 곳으로 향하게 된다.

세상 밖으로

냉각까지 거친 우리는 이제 드디어 면의 모습을 갖췄다. 당신이 봉지를 뜯으면 나오는 바로 그 모습이다. 역으로 말하면 당신을 만나기 위해선 우리가 옷을 갖춰야, 즉 포장이 되어야 한다. 그 옷을 입는 장소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건면 상태를 지나 풀무원 신상품 '로스팅 짜장면 고추기름'이 된다. 어떻게 그렇게 되냐고?

옷을 입는 곳에서 우리 면들과 스프 친구들이 만난다. 면이 태어나는 곳에서의 제면 과정은 시간을 들여 면의 모양을 만들고 숙성과 건조를 거쳐야 했기 때문에 조금 느렸다. 반면 옷 입는 곳의 템포는 위층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면이 태어나는 곳의 우리가 후룸라이드 낙하 전의 느릿한 상태였다면 옷 입는 곳의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의 빠른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는 한결 빨라진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분주히 상품화 절차를 거친다. 벨트를 지날 때마다 나의 몸 위로 건더기 스프와 분말 스프가 하나씩 떨어진다. 스프 두 개가 다 얹히고 나면 순식간에 폴리프로필렌 필름이 날 감싼다. 건면 한 봉지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나는 4봉 1번들 상태로 판매된다. 즉 나는 4개의 라면 봉지를 모아주는 필름으로 한번 더 감싸지고, 우리가 모인 4개 번들은 한 번에 8개씩 상자 안에 들어간다. 상자는 자동으로 접히고 테이핑까지 완료되어 팔레트에 쌓인다. 팔레트에 쌓인 라면 상자들이 한 번 더 싸이고, 쌓인 채 싸인 상자들이 문밖을 빠져나가면 생산 완료다. 우리가 세상으로 나갈 준비가 된 것이다.

여러분이 보는 내 모습은 귀여운 손글씨와 빨간 고추 그림 정도다. 그걸 보면 봉지 속 우리가 얼마나 복잡한 과정의 산물인지 상상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첨단 산업화의 산물이며 시대적 트렌드 그 자체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건강에 덜 나쁘고 칼로리가 낮은 음식을 원한다. 우리 건면은 그런 시대의 부름을 받고 세상에 나왔다. 우리의 고향 풀무원은 한국에서 가장 먼저 건면을 상품화한 회사고, 건면의 기세는 지금이 가장 높다. 우리를 이루는 재료는 말 그대로 전 세계에서 왔으나 최종적 맛을 만든 사람들은 한국의 풀무원 마케터들이다. 그분들은 전국의 중국집을 다니며 맛있는 짜장면을 먹어본 후 '식당 음식을 참고하지 않아도 좋은 걸 만들 수 있다' 는 깨달음을 얻었다. 행복은 집안에 있더라는 <파랑새>같은 이야기다. 이들이 연구소에서 매진한 결과 짜장면계의 파랑새 같은 '로스팅 짜장면 고추기름'이 나왔다.

나는 이런 이야기와 과정을 거쳐 도시 어딘가에 자리 잡았다. 당신이 손을 뻗어 나를 잡아주기를 기다리며 매대에 놓여 있다. 당신의 터치와 결제를 기다리며 어딘가의 물류창고 속 상자 안에 있다. 이제 당신의 차례다. 당신은 누구인가? 어디에 있나? 지금의 당신이 되기까지 어떻게 살아왔나?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을 건가?

후기
식품 공장 취재를 계속하다 보니 원고 줄거리와 구조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식품 공장은 규제와 효율 등의 이슈 때문에 원재료에서 상품까지의 생산 과정이 상당히 비슷하다. 디테일이 다르되 흐름은 같다. 기계적으로 취재하고 원고를 작성하면 줄거리가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차이점을 만들려 각 공장별로 특이한 디테일에 집중한 적이 있다. 그러면 '안 읽힌다'는 답이 한두 개씩 온다. 가독성과 공감을 위해 생산 현장의 인물에 집중하기도 했다. 그러면 또 '정보가 모자란다'는 답이 한두 개씩 온다. 짧은 피드백 한두 개라도 이모저모 마음에 걸리는 건 사실이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도 그랬다. 훌륭한 공장에서 친절하고 전문적인 직원들의 안내를 받았다. 즐겁게 들었고 많이 배웠고 또 한 번 감탄했다. 다만 원고 줄거리가 고민이었다. 답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마감일이 코앞이었다. 막막한 기분을 덮고 잠시 잠이 들었다.

이불을 김밥처럼 두르고 깨어나 보니 컴퓨터 화면에 글이 가득 차 있었다. 면의 요정이 편지를 남기고 갔는지, 아니면 내가 비몽사몽 상태에서 원고를 만든 건지, 잘 모르겠다. 스피커에서 빈 필하모닉 2022년 신년 음악회의 왈츠가 들려왔다.

에디터 박찬용 @parcchanyong

잡지 에디터. 《에스콰이어》등에서 일하며 라이프스타일 업계를 취재해 페이지를 만들었다. 5번째 책 《요즘 브랜드 2》를 만드는 중이다. 매체 연재 틈틈이 ‘앤초비 북 클럽’ 뉴스레터를 보낸다. 이번 마감은 앤초비 북 클럽 마감일과 겹쳐서 분주한 주말을 보냈다.

포토그래퍼 최용준 @___yjc

한국의 건축 사진가. 그의 개인 SNS에서 최용준의 다양한 사진 작업 세계를 볼 수 있다. 오래된 골목도 고가 귀금속 매장도, 최용준이 만든 사진 안에서는 그만의 고유한 풍경이 된다. 일이 많아서 촬영이 끝나면 바람처럼 사라진다.

로스팅 짜장 주문하기

“제가 주변에서도 알아주는 쩝쩝박사거든요.” 녜미는 유튜브 채널 ‘녜미누TV’의 운영자다. 녜미누 TV는 녜미와 남편 미누의 아웃도어 유튜브다. 녜미와 미누가 캠핑을 다니며 장비와 장소를 리뷰한다. 3만 명이 넘는 ‘녜티즌’이 그의 영상을 좋아한다. 아웃도어 먹방도 야무져서 왠지 이 사람은 맛있는 곳을 많이 알 것 같았다. “브런치를 좋아해요. 늦은 시간까지 영상을 편집하고 푹 잔 다음에 열한 시쯤 먹는 식사를 상상해 보세요. 커다란 접시에 식빵, 채소, 과일, 소시지, 감자를 종류별로 담아 차가운 커피랑 먹고 나면, 아! 살맛 나죠."

아이라이크마운틴에서 그릴 샌드위치를 주문하면 감자튀김과 바질 마요네즈 소스가 함께 나온다. 바질이 마요네즈 맛에 훌륭한 액센트가 된다. 녜미는 이 소스를 좋아한다. 빵에 발라 먹고 감자에 찍어 먹는다. “가게에서 기름 냄새가 안 나요. 버터를 둘러 빵을 굽고 베이컨을 튀길 텐데요. 쾌적하게 브런치를 먹기엔 여기가 최고예요.” 녜미는 최근 코로나 후유증으로 미각과 후각을 잃었다. 그때 삶의 의미도 잃을 뻔했다고 했으나 다행히 미각이 돌아왔다. “미각을 되찾은 요즘 고민은 ‘캠핑 가서 뭐 먹지?’ 뿐이에요. 야영할 만한 계곡 알아 뒀는데, 같이 갈래요? 뭘 먹으면 좋을지 알아요.”

아이라이크마운틴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대로2002번길 29

유튜버 녜미 @yamooyamoonemi

글, 사진 ㅣ 에디터 조서형 @veenu.82

사람들의 생각 속 ‘트렌디한 에디터’ 그 자체. 주중에는 브랜딩 에이전시에서 기후위기 잡지를 만든다. 저녁에는 태권도나 축구를 하고 주말에는 자전거 캠핑을 간다. 잡지 <1.5°C> 에디터고 <GQ>, <디에디트> 등에 원고를 기고한다. 최근 축구를 하다 부상당해 당분간 취미를 못 즐긴다. 빠른 쾌유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