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일지 #31 🌰어느 깊은 산 속의 밤🌲

밤송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나요

2022. 10. 4.

요기요의 농장 탐험

서울에서 구례를 거쳐 하동으로 오는 동안
"차를 배릴 낀데…" 지리산 자락 밤 농장에 가기 전에 남자가 우리를 멈춰 세웠다. 산에 차를 댈 곳이 마땅치 않으니 차 두 대에 나눠 탄 취재팀이 차 한 대로 가는 게 나을 거라고 했다. 내 낡은 세단으로 올라가기로 했더니 남자가 차를 배릴(버릴)거라 말했다. 오늘 취재의 주인공이자 하동에서 밤과 감을 키우는 구학농원 최용찬이었다.

차는 이미 고장 나 있었다. 서울에서 구례를 거쳐 하동에 도착했더니 자동차의 우측 전방 방향지시등이 빠져 있었다. 이런 일이 있나 싶었으나 차 라이트가 빠질 만큼 멀리 오긴 했다. 이번의 취재지는 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학리다. 근처에 청학동이 있다. 산 중턱을 오르면 저 멀리로 능선을 가르는 도로와 송전탑이 보인다. 그걸 빼면 모든 게 자연이다. 멀리 왔다는 실감이 났다.

어느 깊은 산 속의 밤

일시 ㅣ 가을이 시작되던 9월 마지막 주

장소 ㅣ 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탐험 난이도 ㅣ 4.1/5.0 ➡ 밤송이가 따가웠다.

획득 물품 ㅣ 알밤 한 박스

우리의 취재를 허락해준 구학농원 최용찬도 먼 길을 왔다. 그는 하동 사람이 아니고 하동에 연고도 없다. 그는 부산 태화백화점에서 기획실장으로까지 일했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세상이 바뀌어 태화백화점이 없어졌다. 때가 되어 회사를 그만뒀다. 그는 직장 생활을 할 때 취미로 낚시를 했다. 낚시를 하다 보니 하동이 참 예뻐서 이 동네에 자리를 잡기로 했다. 역시 부산에서 전산회계를 하던 아내는 남편보다 조금 늦게 하동에 합류했다. 도시 사람들은 그렇게 가을에 밤과 감을 따는 농부가 되었다.

"정확히는 임업입니다." 그의 말대로 밤나무는 농산물이 아닌 임산물이다. 농산물도 임산물도 비즈니스 모델의 종류는 비슷하다. 손님 종류 따라 나누면 B2C와 B2B다. '체험 농장'을 운영하거나 일반인에게 연락처를 공개해 직접 팔거나 별도의 쇼핑몰을 운영하는 곳이 B2C 농수축산임업이다. 마진이 조금 더 좋을 수 있으나 생산과 유통을 함께 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1차 산업 생산자들이 B2B 방식으로 자신의 수확물을 판매한다. 지역 농협 혹은 백화점/마트에 전매하는 식이다. 최용찬의 설명에 따르면 그의 밤은 99%가 농협에 납품되고, 본인이 개별 판매하는 건 1% 정도다.

차고를 높인 최용찬의 포터 트럭을 따라 길을 올랐다. 길은 이런 곳에 어떻게 포장을 했나 싶을 만큼 험했다. 길 중간의 풀이 자동차의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산 중턱의 농막에 도착할 때쯤이 되자 검은 개 한 마리와 흰 개 한 마리가 크게 짖었다. 검은 개가 특히 충견인지 내 차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나를 응징할 듯 짖었다. 최용찬은 식빵 두 덩어리를 꺼내 개들에게 한 장씩 던졌다. 검은 개는 점프를 해서 한 번에 잡고 거세게 뜯었다. 최용찬은 개들을 진정시키고 노란 색 장갑을 꼈다. 밤을 따러 산에 갈 시간이었다.

산 속에는 디테일이
최용찬과 함께 산을 올랐다. 그의 오늘 일은 단순해 보였다. 양동이를 들고 산길을 걷는다. 밤은 따는 게 아니라 줍는다. 산길 안팎에 밤송이들이 떨어져 있었다. 그는 밤을 들여다보다가 수확할 만하다 싶으면 밤송이를 까서 밤을 꺼냈다. 꺼낸 밤을 양동이에 넣었다. 밤나무는 언덕 가득 심어져 있고 최용찬의 발걸음은 급할 게 없었다. 마침 그날은 날씨도 맑았다. 기온은 적당했으나 햇살은 따뜻해서 종일 밤을 주워도 땀이 나지 않을 날씨였다. 시골 생활을 미화하는 나영석의 예능 같은 곳에 쓰여도 좋았을 것이다.

최용찬의 느릿한 발걸음 안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 제 상태의 밤을 따기 위해 약 7개월의 노력이 필요하다. 2월부터 비료를 준다. 화학비료는 나무를 빨리 죽일 수 있기 때문에 가축 분뇨로 만든 비료가 좋다. 가축 분뇨로 만든 비료를 산골짜기까지 차에 싣고 오면 냄새가 나지 않나? "나죠." 최용찬은 잘 웃는 사람이었다. 이런 말도 웃으며 해 주었다. 여기까지가 봄 되기 전의 밤 농장 일이다.

비료를 주고 나면 잎에 약을 친다. 밤꽃 피기 전인 5월 하순, 열매를 맺은 후인 7월 초에, 그리고 비행기로 약을 뿌려주는 항공방제도 한다. 그 사이에 계속 가지를 쳐 주고 나무를 새로 심어 주어야 한다. 밤나무의 수명은 30년 정도다. 이렇게 해야 9월 초부터 나오는 조생종 밤을 딸 수가 있는데 올해는 태풍 힌남노와 난마돌이 한반도 남쪽을 강타했다. 밤나무에서 밤이 다 떨어져버렸다. "생산량이 약 50% 정도 줄어들 것 같습니다." 이런 소식을 전할 때도 최용찬은 희미하게 웃었다. 사는 게 그런 거라는 듯.

"회사 다닐 때와 비교하면, 휴일이 없습니다." 최용찬은 밤과 감을 따는 생활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농사는 휴일에도 안 할 수가 없잖아요. 하다못해 개 밥 주러도 매일 와야 하고." 그러게 말이다. 밤들이 금요일 저녁부터는 '아이구 이제 금요일 저녁이니 떨어지지 말고 나무에 조금 더 붙어 있자구'라고 할 리 없다. 산 중턱에서 밤 농장을 지키는 개들도 토요일이 되면 '오늘부터는 주말이니까 이틀 금식 하고 월요일 아침에 주인이 주는 식빵을 받아먹으면 더 즐겁겠지?'라고 생각할 리도 없다.

최용찬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며 노란 장갑을 낀 손으로 밤을 계속 깠다. 나와 몇 마디 한 것 같은데 금방 바구니 한 통이 가득 찼다. 우리가 산을 걷는 동안에도 어딘가에서 밤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최용찬은 떨어지는 밤에 맞아 상처도 여러 번 났고, 노란 장갑도 특히 두꺼운 '밤 장갑'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모두 도시의 운동화를 신고 갔다가 자꾸 밤에 발이 찔렸다. 최용찬은 두꺼운 가죽 신을 신고 있었다. 세상 모든 일에 디테일이 있다.

환경, 자극, 보상, 성장
하동의 밤과 감이 좋은 데도 이유가 있다. 하동은 일교차가 큰 분지 지형이다. 사람에게는 가혹하나 각종 열매의 당도에는 좋다. 이곳의 일교차는 하루에도 15도에 달한다. 일교차가 15도에 달하면 일상에는 고될 것이다. 성장을 위해서는 비료를 뿌려주면 좋을 것 같다. 현실은 반대다. 식물의 당도를 높이는 건 혹독한 날씨고, 금방 작용하는 비료는 길게 보면 식물을 죽인다. 농사 이야기를 듣다 보면 환경과 자극과 보상과 성장의 미묘한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국은 국토의 70%가 산지이니 밤이 나는 곳도 많다. 가장 많이 나는 곳은 공주지만 하동도 공주에 이어 한국 2위의 밤 생산지다. 홍보 역량이나 관심에는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다. 2016년에는 천안논산고속도로 정안휴게소의 이름을 정안알밤휴게소로 바꿨다. 공주시는 2018년 177억을 투자해 '공주알밤특구'를 만들었다. 반면 이에 못잖은 알밤 산지인 하동군의 지리산청학농협은 바쁘다며 취재를 거절하고 밤 출하장 공개도 거부했다.

정말 홍보할 필요가 없을 만큼 바쁠 수도 있다. 하동의 밤 중 많은 양이 수출된다. "일본 사람들이 밤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중국으로 수출되어서 껍질을 다 까고 일본으로 넘어가서 가공된다고 들었습니다." 최용찬의 말이다. 실제로 밤 수확 기간 동안에는 농협 직원들 역시 주말에도 온 마을을 돌며 농부들이 수확한 밤을 걷어 간다. 최용찬은 마음이 넓었다. "(농협에서 도와주면)지역 홍보도 되고 좋을 낀데..." 라고 하면서도 주말에 일하는 농협 직원들을 이야기할 때는 "그 분들도 고생하는 거지요."라고 말해주었다.

내 손을 움직이며 살아가는 것
그렇게 산 속 깊은 곳에 사는 최용찬 부부의 하루가 간다. 현실은 OX 퀴즈처럼 둘 중 하나로 나뉘지 않는다. 최용찬의 생활도 낭만과 여유와 고생과 불안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 차로 5분쯤 가면 온 산이 내 밤 농장이다. 집 안에 있는 100년 넘은 감나무에는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대봉감이 익어간다. 고즈넉한 삶은 정확히 그만큼 고단하다. 가장 가까운 상점은 차로 10분 거리다. 가스는 LPG를 써야 한다. 밤산에서 자라는 1,000여 그루의 밤에서 나오는 밤 생산량은 생각보다 적고 농사는 쉴 수 있는 날이 하루도 없다. 다만 거기서 하루를 사는 최용찬 부부의 표정은 뭔가를 깨달은 듯 보였다. 자기 발과 자기 손을 움직여 사는 사람만이 갖는 건강이 느껴졌다.

"이 산 사실래요?" 우리가 취재를 구실로 이것저것 묻자 최용찬은 역시 웃으며 밤 산의 구체적인 가격을 알려주었다. '산을 구입한다'라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았으나 가격을 듣고 나니 적어도 숫자만으로는 도전 가능(?)한 액수였다. 그러니 삶은 모를 일이다. 낚시할 때나 하동을 찾던 도시인 최용찬도 이렇게 밤을 따며 살 줄은 몰랐을 것이다. 세상이 변해 다니던 직장이 문을 닫아서, 함께 밤 농사를 지으려던 친구가 떠나서, 그래서 지금 최용찬은 민물고기를 낚는 대신 밤과 감을 따고 산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문명은 진화한다. 최용찬 부부는 이 산 속에서 <오징어게임>과 <수리남>을 다 봤다. "여기도 다 나옵니다." 그가 인자하게 말했다.

"라이트가 빠질 수도 있어요." 서울로 돌아와 단골 카센터 사장님께 소식을 알렸다. 사장님은 오히려 덤덤했다. 구조적으로 빠질 수 있다고. 사장님이 덤덤해하자 내 마음도 진정됐다. 그럴 수 있다는데 별 수 있나. 낚시할 때 찾던 곳에 자리 잡고 밤을 키우는 인생도 있는데. 예상 밖의 일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사람은 조금 더 넓어지는 것 같다. 세상은 그만큼 넓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어딘가에서 지금도 밤송이들이 우르르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최용찬은 자기가 딴 밤을 가끔씩 직접 판매도 한다. 5kg, 10kg 단위의 상자에 담아 출고한다. 그는 이날 취재 자료용으로 5kg 상자에 밤을 담더니 우리에게 선물로 주었다. 역시 그 인자한 얼굴로. 편의점 군밤에 비하면 세 배는 커 보일 밤들이 상자 가득 담겨 있었다. 노동의 산물을 공짜로 받기가 죄송스러웠는데도 한사코 주신다고 하셔서, 정성을 거절하는 것도 예가 아니라 생각했다. 서울로 돌아와 밤을 쪘다. '말도 안 돼' 싶을 정도로 달지는 않았으나 꽤 큰 밤인데도 싱겁지 않았다. 하동의 햇빛과 최용찬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맛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밤을 먹으며 숲 속에 매달려 있고 비포장로에 떨어져 있을 밤들을, 하동의 가을 밤하늘을 생각했다.

에디터 박찬용 @parcchanyong

잡지 에디터. 라이프스타일이라 부르는 소비생활의 안팎을 구경하고 물어보며 정보를 만든다. 5번째 책 《요즘 브랜드 2》를 비롯해 늘 마감이 눈 앞에 있다. 서울에서 일이 생겨 하동에서 곧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포토그래퍼 표기식 @pyokisik

한국에서 가장 이채로운 포트폴리오를 가진 사진가 중 하나. 다양한 사람과 풍경을 표기식만의 색으로 담고 유명 매체와 광고 등 다방면으로 활약한다. 이번 작업 마감 중에는 로비 윌리엄스의 ‘The road to Mandalay’를 추천했다. 가사에 ‘밤밤밤 바라 밤밤밤’이 나와서였다.

요기요에서 만날 수 있는 밤 디저트

몽블랑 에클레어, 패션5

스위트 밤블랑, 뚜레쥬르

밤소보루 맘모스, 파리바게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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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0년 전에 여기에 와서 깐풍기를 먹었는데.” 정수연은 일본 오사카와 한국을 오가며 자랐고 산업디자인과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공했다. 세 권의 사진집을 내고 최근에는 10CM 의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영화루는 10년 전 청운동 토박이 친구를 따라왔다 알게 됐다. 그 후 정수연은 종종 고추간짜장과 깐풍기를 먹으러 영화루에 온다. “구조가 달라졌네. 원래는 바닥에 앉아서 먹었는데. 그래서 오늘 벗기 편한 신발을 신고 왔거든.”

서비스 물만두를 집어 먹다 보니 크고 작은 고추와 함께 볶은 닭튀김이 나왔다. 영화루의 깐풍기는 순살이지만 한 입에 먹기엔 뜨겁고 덩어리가 크다. “가위로 좀 자를게. 어차피 식어도 바삭하니까.” 정수연은 만족스러운 기분을 얻을 수 있다면 다른 건 별로 아끼지 않는다. 음식 역시 종류별로 양껏 주문해 먹는 걸 좋아한다. “중화요리 너무 좋지. 한국의 ‘중국집’도 일본의 ‘츄카’도. 메뉴가 많고 저렴한 데다 맵고 기름진 음식은 기분을 확실히 나아지게 하니까.”

영화루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7길 65
포토그래퍼 정수연 @lifeimagesbyannie

글, 사진ㅣ조서형 @veenu.82 트렌디한 삶을 보고 싶다면 조서형의 SNS를 보면 된다. 힙스터지만 굉장히 근면하고 매너가 좋다. 지금은 강진에 간 걸 보니 앞으로는 강진이 힙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