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리기도 전에

오전 10시 반에 문을 여는 장안동 행운돈까스의 문은 9시에도 열려 있다. 영업을 하지 않는 식당 뒤 부엌에서 하루치 돈까스를 준비한다. 미리 약속을 하고 찾아가 돈까스를 만드는 장면을 구경했다. 

행운돈까스의 돈까스는 한국 옛날풍이다. 돈까스는 농구선수의 손바닥처럼 크다. 그 큰 돈까스를 옛날 경양식집 방식으로 나이프로 썰어 먹는다. 역시 옛날 경양식 식당처럼 음식을 시키면 스프를 준다. 곁들이는 음식은 사각 단무지와 기사식당풍 깍두기. 가성비가 좋은 오징어볶음과 돈까스 콤보 메뉴가 인기다. 그게 전부다. 벽에 유명인 사인도 없고 (요즘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인) '뾰족한 콘셉트'도 없다. 대신 예약은 없다. 브레이크 타임도 없다. SNS에만 올리는 임시 휴일도 없다. 전화로도 포장 주문이 된다.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취재를 하는 동안에도 문 여는 시간인 10시 30분 5분 전에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새침한 가게나 프랜차이즈였다면 손님을 안 받을 수도 있는 시간이다. 행운돈까스는 손님을 받았다. 할머니는 기본 돈까스를 주문했다. 마침 돈까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촬영하기 위해 튀겨달라고 부탁하려던 참이었다. 행운돈까스의 스태프들은 그날의 첫 돈까스를 튀기기 시작했다.

그날의 첫 돈까스를 위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냉장고에는 숙성을 시키고 계란물을 덮은 후 빵가루까지 입힌 돈까스가 몇 통씩 쌓여 있었다. 직접 만드는 소스도 <맥베스>의 마녀들이 쓰는 것처럼 커다란 솥 안에서 이미 다 끓었다. 50L 솥의 반을 채우는 25L의 소스를 직접 만든 뒤 하루에 다 쓴다고 했다. 생선까스에 쓸 타르타르 소스도, 초대형 바구니에 넣어 국물을 빼둔 김치도 준비 완료. 기름 온도를 170도로 맞춰둔 튀김기에 돈까스를 넣어 튀기는 동안 다른 스태프들이 접시에 돈까스의 친구들을 얹는다. 양배추 샐러드. 마카로니와 옥수수를 마요네즈로 버무린 샐러드. 다 튀겨진 돈까스가 얹힌다. 마지막으로 밥솥을 열고 뷔페에서 쓰는 아이스크림 스푼으로 밥을 한 스쿱 뜨면 준비 끝이다. 할머니는 젊은 사람들도 아침으로는 잘 안 먹는 큰 돈까스를 햇살 아래서 남김없이 비우셨다. 

동네 명가는 변한 게 없다

할머니가 앉아 있던 그 자리에서 나도 행운돈까스를 먹어보았다. 고기가 두껍고 튀김옷이 얇고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 일본식 돈까스가 아닌, 크고 두툼해서 호쾌한 한국형 돈까스였다. 말하자면 '왕돈까스' 계열이다. 왕돈까스 계열 중에는 고기가 얇아지거나 튀김에 집중해서 과자를 씹는 듯하거나 고기와 튀김옷이 따로 노는 게 있다. 행운돈까스는 그렇지 않았다. 고기는 적당히 부드럽고 두께가 있으나 퍽퍽하지는 않았다. 

비결은 밀가루를 제외한 것. 보통 돈까스는 고기에 밀가루와 달걀과 빵가루를 순서대로 덮고 튀긴다. 행운돈까스는 거기서 밀가루를 뺐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래도 맛이 사나?' 싶었는데 막상 먹어 보니 오히려 그래서 튀김옷이 더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아침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는 걸 다른 사람도 아닌 할머니가 증명하기도 했고. 할머니가 식사를 하는 중에도 10시 30분이 되자마자 사람들이 하나씩 들어왔다. 혼자 온 남자들이 돈까스와 우동 세트를 먹거나 정식을 먹었다. 익숙한 동네 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는 듯. 맛을 보니 이런 식당이 동네에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튀김옷 안에 들어있는 인생의 교훈

주택가 돈까스집을 떠나 시내로 들어갔다. 행운돈까스가 주택가의 한국형 돈까스집이라면 두 번째로 갈 가쯔야는 사무실 밀집 지역의 국제적 돈까스 가게였다. 가쯔야 대표 심봉섭은 마스크를 벗기 전에는 연령대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세가 꼿꼿하고 눈빛이 빛났다. 30대라고 해도, 60대라고 해도 놀랍지 않을 그는 "나는 할 말이 별로 없는데~"라면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경험상 보통 이런 사람들 말이 재미있다. 실제로 그의 이야기는 상당히 재미있었다. 

그의 삶과 돈까스와 요리는 큰 상관이 없었다. 그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증권사에 들어갔다. 해외영업을 해서 일본 주재원이 되어 1990년대에 일본 생활을 한 것이 돈까스를 만난 계기가 되었다. 직장인을 하다 보면 언젠가 그만둬야 하는데, 내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모든 직장인이 그런 생각을 한다. 심봉섭은 보통 사람과 달리 이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충실히 준비하고 과감히 실행에 옮기고 뒤를 돌아보지 않으며 정면으로 승부한다. 가쯔야에서 배울 수 있는 삶의 교훈이다. 심봉섭은 일본의 지인을 통해 돈까스를 배울 식당을 연결받았다. 100년 넘은 우에노의 히레카츠 명가와 대중적인 돈까스집 등에서 경험을 쌓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무교동 빌딩 지하상가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돈까스였던 이유는 일본인들이 "한국에는 맛있는 돈까스집이 없다"고 이야기한 걸 들어서다. 무교동이었던 이유는 당시 일본인 직장인이 그 동네에 많아서 '그(일본인)들에게 인정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처가의 반대가 심했다는데 그럴 만도 하다. 처음에는 손님이 없었는데 몇 달 만에 지하상가에서도 줄을 세우는 식당이 되었다. 기본에 충실한 정면승부가 성공했다. 

"제가 일본에서 배운 게 있어요. 잔재주를 부리지 마라." 초롱초롱한 사장님은 내내 초롱초롱하게 이야기했다. 설명을 들어봐도 잔재주는 느껴지지 않았다. 좋은 고기를 쓰고 배운 대로 일한다. 체력 관리를 위해 출근 전에 운동한다. 주방은 늘 깨끗하게 정리한다. 예전에는 브레이크 타임에 낮잠을 잤는데 요즘은 브레이크 타임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자세가 꼿꼿하고 말에 조리가 있을 만했다. 자기 몸으로 열심히 운동했고, 그 건강을 활용해 자기 삶을 살았으니. 

"돈까스를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해요."라고 말하는 심봉섭의 손을 따라 돈까스 만드는 법을 구경했다. 흥미롭게도 행운돈까스와 달랐다. 숙성한 고기에 빵가루를 묻혀 대기시키는 대신 가쯔야의 돈까스는 소금도 뿌리지 않는다(연육은 전날 해 둔다). 주문이 들어오면 후추와 소금을 뿌린다. 밀가루에 굴린다. 밀가루를 깨끗하게 털어 흰 가루가 얇게 묻도록 한다. 거기 달걀을 살짝 입히고 빵가루를 입힌다. "아주 간단하죠?"라고 했지만 집에서 돈까스만 해 봐도 저 연속 동작을 군더더기 없이 하는 게 쉽지 않음을 안다. 

거기 더해 모든 게 디테일이다. 후추와 소금을 뿌리는 데도 순서가 있다. 후추를 먼저 뿌린다. 거기도 이유가 있다. 검은 후추를 뿌리고 흰 소금을 뿌려야 소금이 뿌려진 양을 알 수 있으니까. 역시 기름 온도 170도로 맞춰둔 튀김기에 넣어 적당히 튀겨주면 돈까스가 완성된다. 미리 얇게 체를 쳐 둔 양배추와 함께 제공한다. 소스는 테이블마다 있으니 따로 뿌려 먹으면 된다. 그는 돈까스를 찍어 먹는 대신 적당히 뿌려 먹는 방식을 추천한다. 일본 튀김집처럼 소금을 곁들여 먹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맛과 약속

그렇게 만든 돈까스 맛은 한국에서 쉽게 맛보지 못할 맛이다. 재료 내부의 수분과 기름을 최대한 살리는 일본식 돈까스와 튀김의 방법론이 상당히 재연되어 있다. 히레까스는 골프공과 테니스공 사이 정도 크기의 돼지 안심 조각을 튀긴다. 고기를 썰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튀김옷 속의 육즙이 살아 있다.  조금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 먹어보면 포만감이 상당하다. 회사 앞에 있으면 1~2주일에 한 번은 생각날 것 같다. 실제로 사장님은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손님이 제일 좋다고 했다. "매일 오면 한 달쯤 오다가 질려서 다시는 안 와"라면서.

가쯔야는 본산지에서 제대로 배운 걸 현지에 이식하며 자리잡았다. 일본인에게 인정받았다. 한국 시장에서도 안착했다. 사업을 위해 저녁 장사를 해야 하니까 안주를 만들어야 하는데, 안주 개념을 생각하다 보니 돈까스를 곁들인 두부김치와 골뱅이무침(돈뱅이)를 고안했다. 간단한 사케도 판매하니 돈뱅이와 돈까스 두부김치를 먹으면서 데운 사케를 먹을 수도 있다. 이거야말로 일본 현지에서도 못 즐길 한일 양국풍 술자리 안주다.

가쯔야를 뉴스에서 검색하면 의외의 칼럼이 나온다. 기독교계 신문인 국민일보의 신앙 칼럼 '로뎀나무' 2009년 원고다. 이 칼럼에서는 맛집과 신앙생활을 잇는 논리를 선보이며 가쯔야를 언급한다. 제일 잘하는 음식 한두개에 집중해 맛집이 되듯 신앙생활도 하나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 원고의 마지막 말에는 특정 신앙을 넘어서는 보편성이 있다. ‘단순한 시선이 고난을 극복하는 힘을 가져다준다.’ ‘승리의 길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옳으신 말씀. 단순한 길을 가는 과정이 어려울 뿐이다.

오늘의 식당들이 그랬다. 장안동 행운돈까스와 무교동 가쯔야가 대단히 화려한 식당은 아니었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 요소도 없었다. 대신 나는 그저 세 가지를 보았다. 깨끗한 부엌. 맛있는 음식. 그리고 여러 번 온 듯한 손님들. 다음에 와도 이 맛이 그대로일 거라는 약속 같았다.

영화루 서울 광진구 광나루로24길 31-7
마케터 유제준 @modu

글, 사진ㅣ조서형 @veenu.82  성수동과 용산을 오가며 트렌디한 삶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 시대의 에디터. 힙스터의 상징 우핸들 자동차를 구입한 데 이어 최근에는 오토바이도 사려 하고 있다. 무슨 오토바이를 살 예정인지는 아직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