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신사 "급하게 나갈 필요 없잖아요?" 어둠 속에서 강원도 말투와 경북 말투가 조금 섞인 남자 말씨가 들렸다. 11월 11일 금요일 새벽 5시 10분.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선착장에 매여 있는 어선 '길영호' 앞에서 김귀봉 선장을 만났다. 그의 피부는 뒷목까지 빠짐없이 까맸다. 햇빛 아래 일하는 사람들의 색이었다.
"문어 낚시는 바다의 신사라고 해요." 길영호를 보니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문어를 잡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그물을 던져두는 통발. 직접 잠수해 내려가는 머구리, 길영호 같은 방식의 낚시. 동해에서는 낚시 혹은 머구리만 쓴다. 문어 낚싯배에는 비린내도 나지 않았다. 문어 낚시는 미끼를 쓰지 않는다. 문어는 미끼 대신 빛에 반응한다. 문어 낚시 바늘에는 미끼 대신 제기의 술처럼 얇은 은색 플라스틱 필름이 붙어 있었다.
김귀봉 선장도 묵호항의 신사였다. 그는 나의 고정관념 속 거친 바다 사나이와는 전혀 달랐다. 자기 배를 가져 보는 게 로망이라 2018년까지 도시에서 살다 귀어했다. 목소리가 크지도, 입이 거칠지도, 손동작이 크지도 않았다. 그는 문어 박물관의 전시 기획자처럼 모든 질문에 조리 있게 말해주었다. 일이 끝나면 동해시 60세 이상 축구팀에서 축구를 하고 골프를 친다고 했다. 그의 생활과 문어 낚시에 대한 이야기를 다 나누자 둘 다 애를 써도 어쩔 수 없는 소개팅의 침묵 같은 시간이 잠시 흘렀다. "이제 나갈까요?" 김귀봉은 배 엔진의 시동을 걸었다
동해 문어 취재 나갔다가 무너지고 돌아온 사연
일시 ㅣ 11월 11일 오전 5시
장소 ㅣ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탐험 난이도 ㅣ 4.95/5.0 ➡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거친 바다의 신사 이번 촬영의 변수는 날짜였다. 일기예보는 일주일 치만 나왔다. 일기예보가 나오고 그에 따라 촬영 일자를 11월 11일 금요일로 잡았다. 화요일에 연락이 왔다. 목요일 날씨가 더 좋은데 그때 올 수 있냐고. 우리 측 일정도 있으니 날짜를 바꿀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든 목요일에 갔어야 했다.
길영호는 방파제 속 호수같은 바다를 가로질렀다. 이날 예상 파고는 0.5~1.5m.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배도 여러 번 타 봤고 작은 배에서 취재를 한 적도 있다. 뱃멀미가 약간 있을 수는 있어도 취재 업무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취재팀 모두 동의했다. 우리 모두의 착각이었다. 우리는 문어 낚시 방법을 간과하고 있었다.
문어 낚시 도구는 배에서 던지는 방식이다. 낚싯줄이 감겨 있는 나무토막에 스티로폼 공을 붙인 게 문어 낚시 도구다. 그걸 던지면 바다 위 부표처럼 스티로폼 공이 떠 있다. 그걸 기다린 뒤 걷어올리는 게 문어 낚시다. 이런 낚시에서 효율을 꾀하려면 어느 한 포인트를 중심으로 두고 컴퍼스처럼 계속 돌아야 했다. 땅이 1m씩 흔들리는데 나선형 회전 주차장을 끝없이 도는 식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게 무슨 기분인지도 모르다가 나는 취재 도중 말 그대로 주저앉았다. 작동 불능 상태가 되었다. 함께 한 사진가를 포함해 우리 모두 작동 불능 상태가 되기까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물이 많이 간다!" 선내 무전으로 바다 위의 문어잡이 선장님들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물이 많이 간다'는 건 조류가 세다는 뜻이었다. 조류가 약해야 낚싯줄이 똑바로 바다 밑까지 떨어져 문어가 미끼를 잡을 확률이 높아진다. 조류가 강하면 낚싯줄이 흔들려 문어가 덜 잡힌다. 김귀봉 역시 타기 전부터 문어가 잡힐지 걱정했다. 우리도 걱정했다. 문어 낚시 장면을 못 찍을까봐. 타고 나니 우리의 몸 상태가 걱정이었다.
"돌아갈까요?" 김귀봉이 신사적으로 물었다. 처음엔 거절했다. 조업에 방해가 될 순 없다. 우리의 조업도 중요했다. 문어 낚시 사진을 얻고 싶었다. 그런데 파도가 높아졌다. 배는 계속 빙빙 돌았다. 어느새 사진가 신동훈도 내 옆에 쓰러지듯 앉았다. 이런 상황에서 배를 몰고 낚시 도구를 던지는 김귀봉은 바다의 신사가 아니라 바다의 신처럼 보였다. 김귀봉은 우리가 작동 불능 상태임을 아는 듯했다. 그는 낚시 도구를 몇 개 더 던지고 한번 더 물었다. "돌아갈까요?" 나는 송구스럽게도 그러자고 할 수밖에 없었다.
"취재 온 분들 배멀미!" "배멀미가 심해서!" "돌아간다!" 김귀봉은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 묵호항에서 우리는 조금 유명해져 있었다. 배멀미해서 뻗은 사람들로. 김귀봉은 좀 쉬라며 묵호연승어업조합 휴게실 문을 열어 주었다. 뇌가 머리 속에서 흔들리는 기분이 가시지 않았으나 취재를 해야 했다. 다행히 묵호항에는 문어가 있었다.
묵호항 어시장 옆 그물 짜는 곳을 지나면 어부들이 문어를 모아두는 수족관이 나온다. 이날 잡힌 문어는 모두 여기 모인다. 이날은 관리인과 수협 직원과 연구원이 있었다. 관리인은 문어를 잡아 무게를 재고 수족관에 넣는다. 30대 중반쯤 된 듯한 튼튼한 여성, 무릎까지 오는 앞치마에 장화를 신고 있었다. 수협 직원은 작은 목소리로 강원 방언을 말하는 남자였다. 나이는 관리인보다 조금 어려 보였다. 그가 관리인께 무게를 듣고 무게를 적었다. 그 옆에 동해수산연구소에서 나온 연구원이 문어의 데이터를 모으고 있었다.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문어 어부들이 한 명씩 오기 시작했다. 차를 타거나 걷거나 스쿠터를 타고 와서 이날 잡은 문어를 내려놓았다. 관리인이 저울 위에 문어를 올리고 몸무게를 불렀다. "이쩜 삼키로." 수협 직원이 그 무게를 듣고 메모지에 적었다. 그 옆에서 초로의 남자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묵호연승협회 3선단 대호호 이효철 선장. 그가 동해시로부터 우리 취재진을 소개받고 김귀봉 선장을 알려주었다고 했다. 그 역시 '바다의 신사'답게 말씨가 점잖았다. 요즘 귀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40대도 있고, 80대까지 배를 타는 사람도 있다고 이효철이 말했다. 바다에 신이 많이 있었다.
문어가 바다를 떠나 육지로 오면 인간 세상의 비즈니스에 편입된다. 어부들이 잡아온 문어는 어시장을 거쳐 일반 시장으로 출하된다. 묵호항의 문어는 나가기 전에 가격이 정해져 있다. 어선이 출항하기 전인 새벽에 경매사들이 모여 그날의 가격을 경매로 결정한다. 우리가 묵호를 찾았던 날 문어의 kg당 가격은 약 37,000원. 여기 문어 무게를 곱한 게 문어 어부가 버는 돈이다. 이 문어는 이날 묵호항 어시장에서는 kg당 45,000원에 판매했다. 이 정도면 합리적이다.
문어는 생각보다 크다. 이날 본 가장 큰 문어는 18kg. 실제로 보면 웬만한 대형견만하다. 김귀봉 선장이 잡아본 가장 큰 문어도 44kg라고 했다(어부들은 자신이 잡았던 큰 물고기에 대해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문어의 가격과 급수는 무게에 따라 달라진다. 600g 이하는 방류한다. 600g부터 2kg까지는 소문어. 2kg부터 15kg까지 중문어, 15kg를 넘으면 대문어다. 대문어가 되면 kg당 단가가 조금 저렴해진다. 그래도 비싼데다 양도 아주 많으니 보통 상황에서는 구매할 수 없다. 묵호항에는 문어 전문 상인도 있다. 그 분들의 수조에는 문어만 들어 있다.
맛은 어떨까. 김귀봉은 투망으로 잡는 남해 쪽 문어의 맛을 두고 '약간 짠내가 난다'고 표현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문어가 투망 안에 하루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쪽 문어는 조금 짠내가 난다고도 해요." 동해에서 바로 잡혀 오는 문어에게선 (문어에겐 미안하나) 그럴 일이 없다. 동해는 잔칫집이나 상가에서 대문어를 삶아 손님들에게 준다고 했다. 문어를 보니 그럴 만했다. 이런 음식이 나오면 손님 대접 분위기가 날 것이다.
한국은 여러 가지가 지나칠 정도로 편하다. 문어 전문 상인께 문어를 구입하고 추가 비용을 드리면 바로 삶아서 포장해 택배로 보내준다. 그렇게 받아 맛을 보았다. 이견이 필요 없는 맛이었다. 저렴한 문어보다는 부드러우나 어느 정도의 악력은 필요할 만큼 쫄깃하다. 비린 맛 없이 바다의 것임이 느껴질 만큼만 짜다. 충분히 고급스러웠다. 잔치에서 나와도 손색없을 만큼.
문어 비즈니스 인간 사회에서 숫자로 환산되는 문어는 그저 비싸 보인다. Kg당 몇 만원, 삶는 가격 얼마같은 식으로. 문어 잡는 배를 타보고 나니 그 가격은 비싼 게 아니었다. 어두운 새벽에 바다로 나가 파도를 타며 낚시를 던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잡아온 문어를 받아 무게를 재는 사람들, 그 문어를 받아 팔거나 삶아주는 사람들. 그 과정을 보면 문어 값에도 이유가 있음을 깨닫는다. 문어는 100% 자연산이다. 양식이 없다. 문어 어선은 주로 한두 사람만 탄다. 낚시니까 매번 잡힌다는 보장도 없다. 잡힌 문어의 맛에는 상급 식재료다운 품위가 있다. 비싸질 수밖에.
현대 사회의 개별 인간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정보와 권한을 갖고 있다. 요기요를 비롯한 모바일 플랫폼 덕에 약 10년 전만 해도 생각도 못했을 정도의 다양한 상품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편리하게, 빠르게. 문명의 쾌거 수준의 발달이다. 그러나 원재료가 나오는 현장에는 변함이 없다. 여전히 위험과 고난이 있다. 내가 느낀 멀미의 기준으로 그 현장은 아주 험난했다.
요기레터는 아침에 발송된다. 당신이 스마트폰이나 PC로 레터를 바로 열었다면, 지금 시간쯤 동해 앞바다에 약 50여 척의 문어 어선이 떠 있다. 문어 낚시를 던져 두고 흔들리는 배 위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문어를 끌어올리고 있다. 당신이 오늘 저녁에 문어를 먹는다면 누군가가 어제쯤, 아니면 오늘 아침에 파도 위에서 낚시 도구를 던져 문어를 끌어올렸다는 뜻이다. 우리만큼이나 누군가도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요기레터 에디터. 다양한 잡지사와 에이전시 등에서 일했다. 잡지에서 구현될 수 있는 롱 폼 저널리즘이나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에 관심이 있어 계속 비슷한 일을 한다. 논픽션의 재미는 등장인물의 고생에서 온다는 생각에 문어 취재를 기획했다. 재미는 모르겠으나 고생은 확실했다.
“맛있기도 하지만 멋있기까지 한 식당은 찾기 힘들죠.” 라고 말하는 김기훈 대표는 합정동과 성수동의 인기 라멘 가게 라무라의 대표다. 그는 음식의 맛만큼이나 그 식당만의 멋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성수동에서 꼭 가봐야 할 맛집으로 롸카두들 네쉬빌 핫치킨을 골랐다. “한국에서 네쉬빌 핫 치킨 버거의 인기를 이끈 선봉장입니다. 매장 인테리어는 NBA, 스케이트 컬쳐, 올드 힙합을 테마로 채워졌어요. 버거가 없어도 찾아가고 싶게 만드는 곳이죠.”
‘맛집’이자 ‘멋집’ 롸카두들에서는 어떤 메뉴를 시키면 좋을까? “운동을 한 날엔 닭가슴살로 패티를 만든 ‘O.G’, 운동을 하지 않은 날엔 닭다리살 패티가 들어간 ‘클래식’을 시킵니다. 매운 음식을 잘 못 드시더라도 맵기 1단계 정도까지는 올려 보시는 걸 추천니합다.” 매장이 아닌 집에서 롸카두들 먹을 때는 어떤 노래를 곁들이면 좋을까? “노토리어스 B.I.G.의 ‘Big Poppa’를 틀어놓고 먹는 롸카두들? 이거야말로 신선놀음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