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취재는 변수의 연속이다. 서울에 큰 비가 온 다음 날이 요기레터 취재 가는 날이었다. 이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사진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사진가의 스튜디오는 지하에 있는 경우가 많다. 사진가의 스튜디오나 집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러면 취재도 끝이다. 다행히 오늘 함께하는 요기레터의 친구 송시영은 문제없이 촬영을 나올 수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멈추지 않는 비를 뚫고 오늘의 현장에 도착했다.

오늘 찾은 곳은 지금까지 요기레터에서 찾은 식품 공장 중 가장 독특한 공장이다. 우리는 이것을 먹지만 이걸 식품 공장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곳은 대규모 식품 공장인데도 딱 하나의 재료만 쓰고, 식품 공장인데도 1년에 3개월은 가동하지 않는다. 얼핏 들으면 이걸 만드는 데 노하우가 있으려나 싶으면서도 실제로 가서 보니 역시 또 대단한 노하우가 있었다. 우리가 찾은 곳은 춘천 당림리에 있는 풀무원 얼음 공장이었다. 

얼음 공장만의 독특한 점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건 불가능하다. 얼음 공장이기 때문에 여기에만 있는 게 있다. 얼음 공장이므로 다른 공장에서는 없는 것도 있다. 각종 규제와 법령을 충실히 수행하니 업계 표준과 평균을 충실히 지향하는 부분도 물론 있다. 이것들을 하나씩 알아보려면 일단 얼음 공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도착해 박준혁 풀무원 춘천얼음생산파트 파트장과 인사를 나누고 공장으로 들어갔다.

특이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이곳에 들어가려면 방한복을 입어야 했다. 본격적인 겨울용 흰색 솜 패딩을 받아 입었다. 사진가는 반바지를 입고 와서 방한복 바지도 따로 받아 입었다(이 바지가 공장 안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한다). 박준혁은 프로답게 풀무원 시그니처 컬러인 연두색 조끼만 입었다. 방한복 위에 일회용 가운을 걸치고 헤어 캡을 쓰고 안전 장화를 신었다. 소독 절차를 거치자 공장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다.

얼음 공장에만 있는 것들

식품 공장 취재를 다니다 보니 식품 공장에 최적화된 생산 동선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식품 공장은 원물 진입부터 완성품 출고까지의 흐름을 고려해 만들어졌다. 제조, 숙성, 가열, 검수, 포장까지 마치고 포장된 상품들이 창고로 들어가면 출고 준비가 끝난다.

얼음 공장도 이 과정 자체는 같았다. 크게 나누면 만든다-부순다-담는다-내보낸다 수순이다. 일단 큰 얼음을 만든다(공장에서는 원빙이라 부름). 그 얼음을 (쇄빙기에서) 작게 부순다. 작게 부순 얼음을 용도에 맞게 (컵 혹은 봉지에) 담는다. 담은 얼음을 상자 포장해 출고한다.

그러므로 프로 수준의 안전 관련 공정 역시 잘 준수되고 있었다. 이날 만난 박준혁 파트장은 업무에 비밀이 없다는 듯 시원하게 여러 가지를 알려주며 안전과 건강 관련 규정이 잘 지켜진다는 걸 강조했다. 그 예 중 하나가 얼음을 만드는 수질이다. 얼음 공장에 쓰는 물은 지하 200m에서 끌어 올린 깨끗한 물인데, 그걸 3중 필터를 거쳐서 정수해 얼음 재료로 쓴다. 생수 수준의 정수처리라고 한다. 

얼음을 만드는 각종 디테일도 흥미로웠다. 얼음을 만드는 과정 자체는 가정용 냉장고와 얼음 공장이 같다. 규모만 다르다. 그러면 왜 풀무원 얼음은 더 천천히 녹는 것 같고 더 단단하고 더 투명해 보일까? 규모 때문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얼음 공장만의 디테일도 있으나 그 디테일을 위해서는 생산 규모가 담보되어야 한다. 

얼음이 천천히 녹는 이유는 천천히 얼리기 때문이다. 원빙을 얼리는 시간만 10시간 정도다. 얼음이 더 투명한 것도 사실이다. 얼음이 투명하다는 건 얼음 안의 공기와 미네랄이 없음을 뜻한다. 공장에서 만드는 얼음은 냉동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공기를 쏘기 때문에 미네랄이 한 쪽으로 모인다. 그 결과 미네랄이 모이지 않은 곳의 얼음이 더 투명해진다. 실제 공장에서 본 원빙은 원빙을 처음 본 내 눈으로 보기에는 유리처럼 보였다. 얼음이 이렇게 투명할 수 있는 거구나 싶었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늘 아마추어는 상상하지 못할 엄격함이 있는 법이다. 얼음 공장 벽 한 켠에는 원빙의 품질 기준표가 붙어 있었다. 총 7단계 기준에 각각의 품질 설명이 적혔다. 품질을 결정짓는 건 투명도, 기포, 미네랄이 쏠려서 생긴 백탁 등이다. 총 7단계 기준 중 하위 2단계는 상품으로 출고되지 않는다. 그 설명에 따르면 집에서 얼린 얼음은 6단계쯤 된다. 기포가 너무 많아서 풀무원에서 출고될 수 없다. 유리처럼 투명한 원빙을 보니 '얼음이 필요하다면 그냥 저걸 사 먹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음 공장에 없는 것

얼음은 사람이 먹지만 얼음 공장은 지금까지 가본 어떤 식품 공장과도 달랐다. 여기에는 다른 식품 공장에는 없는 게 몇 개 있다. 예를 들어 열. 요리의 필수 요소 중 하나는 가열로 인한 성질 변형이다. 회 등의 요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요리가 열을 쓴다. 요기레터에서 가본 공장들도 마찬가지였다. 요거트 공장마저 살균 과정에서 열을 쓴다. 반면 얼음 공장엔 열원이 없다. 물을 얼리기만 하면 되니까. 아울러 원빙을 부수는 쇄빙실은 1년 내내 영하 20도 남짓하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들어갔는데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추위가 밀려왔다. 송시영이 방한복 바지를 입지 않았다면 내가 아주 미안해질 뻔했다.

얼음 공장에 없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요소는 식재료다. 모든 식품 공장은 식재료를 입고해 식품 상태로 출고시킨다. 얼음 공장에는 입고될 식재료 자체가 없다. 공장 부지 지하 200m에서 올라오는 물을 정수 처리해서 얼리면 재료 수급은 끝이다. 대동강 물을 팔았다던 봉이 김선달의 시대를 지나 한강변 물을 얼려 파는 바른먹거리 풀선달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입고되는 재료가 없이 깨끗하게 정수한 물을 얼리기만 하면 되는 상품이기 때문에 얼음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얼음은 유통기한이 없다. 박준혁 파트장은 "제조기한은 표기되어 있지만 이것이 유통기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해주었다. 그 결과 얼음은 성수기를 위한 조기 생산과 비축이 가능하다. 이들은 봄인 3월부터 그해 여름에 쓰이는 얼음을 비축해둔다고 했다. 지금은 성수기라 사정이 다르다. 오늘 만든 얼음은 1주일 정도면 출고될 거라고 한다. 반대로 11월부터 2월까지는 공장이 쉰다.

얼음 안에서

이 모든 얼음 생산을 총괄하는 사람이 오늘 공장을 설명해준 박준혁 파트장이다. 그는 친절한 실무자 모드로 얼음 공장에 관련된 여러 가지를 말해 주었다. 가열도 없고 입고되는 식재료도 없으니 얼음 공장의 일은 1년 내내 얼리고 부숴서 내보내기만 하면 되는 거라 볼 수도 있겠으나 늘 현실은 복잡하다. 얼음 공장에서 운영의 묘는 냉동기의 효율이다. 외부 온도에 따라 냉각기가 사용해야 하는 에너지의 양이 다를 테고, 그 모든 게 얼음 생산량의 변수이니 그런 걸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준혁 파트장은 간장 공장과 생면 공장을 거쳐 얼음 공장에서 일한다고 했다. 이전 공장에 비하면 (식재료가 없으니) 몸에 냄새가 밸 일은 없지만 역시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다고 건조하게 말해주었다. '일은 재미있으시냐'고 물었더니 근 6개월간 들은 질문 중 가장 어이없는 질문이라는 표정을 잠깐 지은 후 프로답게 마무리했다. "너무 좋습니다. 행복하고요." 이런 분들 덕에 도시의 내가 편의점에서 투명한 돌얼음을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풀무원 춘천 얼음 공장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춘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가평이나 강촌역과 가깝다. 북한강 남쪽에는 추억의 강촌 MT촌이나 몇몇 스키장이 있고, 바로 그 북한강 북단 산골짜기에 한국 최대 규모의 얼음 공장이 있다. 지금 같은 여름에는 하루 24시간 가동되며 우리의 더운 여름을 조금 더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얼음이 나온다. 우리의 지식이나 정보나 관심 바깥에서 계속 무엇인가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물류망을 타고 전국으로 흘러 집 앞 편의점 냉동고에 놓인 컵 돌얼음이 된다. 새삼 깨닫게 된다. 문명은 대단하다.

타코스탠드 서울시 용산구 신흥로 5길 8, 1층
노스트레스버거 대표 송동진 @alldaysmileboy

글, 사진ㅣ 조서형 에디터  @veenu.82 

사람들의 생각 속 ‘트렌디한 에디터’ 그 자체. 주중에는 브랜딩 에이전시에서 기후위기 잡지를 만든다. 저녁에는 태권도나 축구를 하고 주말에는 자전거 캠핑을 간다. 각종 매체에 원고를 기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