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몇 년 전 런던 최초로 인도 요리로 미쉐린의 별을 받은 레스토랑 사장님 판자비 여사를 인터뷰했다. 그때 인도 카레의 맛을 한 단어로 표현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판자비 여사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복잡성(complexcity)." 챠크라의 부엌에서 그때 인터뷰가 생각났다. 완성된 카레만 덜렁 보면 카레는 그릇 속 붉은 뭔가일 뿐이다. 카레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나서야 카레 한 그릇에 복잡한 향신료가 어떻게 쌓여 나가는지 실감이 갔다. 냄비에서 향신료들과 볶고 끓인 걸쭉한 카레가 한 그릇에 담기고, 그 위로 고추가 얹혔다. 우리는 다시 테이블로 가 카레를 먹었다. 샨티 프린스가 말한 향신료가 하나하나 조금씩 더 느껴지는 듯했다. 샨티 프린스의 22년이 카레 한 그릇에 들어 있었다. 

서울엔 이른바 인도 카레집이 많다. 한남동을 조금 넘어가면 창신동 쪽 동대문에도 카레집이 있다. 샨티 프린스가 느끼기엔 모두 맛이 다를까? 그녀에게 물었더니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이슬람 성원 근처의 카레 식당들은 파키스탄 사람들이 해요. 내 입맛에 거기 음식은 좀 간이 세요. 동대문 근처에 있는 식당들은 네팔 사람이 하죠. 거기는 좀 달아요. 그리고 거기는 난이 맛있어요. 좋은 난을 만들더라구."

이런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 깨닫는다. 동대문과 이슬람 성원과 인도대사관 근처의 카레집이 어떻게 다른지 이때 제대로 알았으니까. 샨티 프린스는 유튜브에서 한식을 배웠고 새마을식당에도 종종 간다. '한국 사람 다 됐다'라고 하기도 어색할 만큼 샨티 프린스는 이곳에 익숙하다. 한국에서 외국인학교를 다닌 그녀의 큰딸은 석사 마지막 학기를 할 만큼 어른이 됐다. 나는 샨티 프린스가 종교적인 이유로 소고기를 안 먹나 했는데 웬걸, 샨티 프린스는 미국인 개신교 교회에 다니고 소고기도 잘 먹었다. 샨티 프린스에 대해 내가 가졌던 예상 중 맞는 건 하나도 없었다.

맛 이야기는 별로 안 한 것 같은데 챠크라 카레는 전반적으로 세련된 느낌이다. 크게 모자라거나 튀는 부분 없이 각자의 향신료가 자신의 존재를 떳떳이 주장하는 채로 조화로운 맛을 낸다. 수백 명이 나와서 끝없이 춤을 추는데 미장센이 기막히게 떨어지는 인도 팝의 뮤직비디오가 생각나는 맛이다. 

챠크라의 샨티 프린스가 한남 이태원 권역의 동쪽 끝에 있다면 서쪽 끝 녹사평 언덕 부다스벨리에는 가오가 있다. 가오는 한국에 돈을 벌러 온 지 2년이 됐고 방콕 하얏트에서 5년간 셰프로 일했다. 더 묻고 싶었지만 내가 가오에 대해 아는 건 여기까지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에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몰랐고 가오는 보여줘야 할 카레가 너무 많았고 부엌은 너무 더웠다. 나는 식재료를 볶는 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가오의 이야기를 들으려 애쓰며 가오의 손놀림을 살폈다.

가오는 늘 해왔던 일이라는 듯 카레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날의 카레는 그린 커리, 믹스 커리, 새우 커리였다. 소스를 만드는 과정에는 차이가 없고 재료가 익는 시간에 따라 볶는 시간과 웍을 흔드는 팔의 세기만 달랐다. 요리는 타이밍이고 볶는 건 특히 순간적인 타이밍이고 가오는 그 면에서 훈련된 셰프였다. 새우를 볶을 때와 딱딱한 브로콜리를 볶을 때의 숙련도만 봐도 웍을 흔들어왔을 가오의 지난 시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 볶고 나니 가오가 짧게 물었다. "픽쳐?" 호텔 셰프들은 사진 촬영에 적합한 조리 포즈를 잘 지어주곤 한다. 가오 역시 호텔 셰프와 다름없이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해 주었다. 

부다스벨리의 테라스 석은 전망이 좋다. 반포대교로 내려가는 길을 바라보며 창 맥주 같은 걸 마시면서 한 번도 안 들어봤는데 이상하게 익숙한 라운지 음악을 들으면서 카레를 기다리다 보면 '아 맞아 동남아 식당은 이런 거지' 싶은 생각이 든다. 잠깐 멍하니 있다 보니 가오가 만들어준 카레 세 접시가 도착했다. 인도 커리에 비하면 여러모로 한층 가볍다. 점도도 묽고 각 향신료의 맛 역시 입안에서 더 뾰족하게 새겨지는 기분이다. 이 역시 '아 맞아 이게 동남아 맛이었지' 싶은 그런 기분이다.

부다스벨리 역시 챠크라처럼 지역 명소다. 태국 대사관에서 지정한 우수 태국 음식점인 '타이 셀렉트'에도 지정됐다. 당신이 서울에 살고 이태원 한남 권역에 자주 왔다면 한 번쯤 와봤거나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당신과 나는 가오같은 사람의 존재 역시 몰랐을 것이다. 우리가 앉아 있는 층 바로 위에서 태국 아주머니들과 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 같은 솜씨로 새우를 볶고 그 위에 코코넛 밀크를 살짝 뿌린 카레를 만드는 가오를. 

모두의 삶은 다르지만 분명 공통점도 있다. 지금 어디선가 이걸 읽을 당신도 그렇듯, 우리 모두 각자의 일을 하며 각자의 디테일을 매만지고 고민하고 점점 나아지려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더 남들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부다스벨리의 새우 카레에 대해서도. 태국 음식은 접시가 크고 카레는 원래 담으면 양이 적어 보인다. 그래서 부다스벨리의 새우 카레는 배달 용기에 담았을 때 양이 너무 적다는 클레임을 종종 받는다고 한다. 배달음식 시대의 클레임이다. 이 정도는 여유로워져도 좋을 것 같다.

나의 요기요 찜 리스트 제일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곱창에반하다>. 주로 시켜 먹는 메뉴는 대구막창 소금구이와 야채곱창이다. 두 메뉴 모두 야채가 많이 들어있고 기름기 없이 깔끔한 맛이라서 와인 안주로 제격이다. 식당에 가서 곱창을 구워 먹으면 기름이 많아 마지막에는 늘 속이 느끼했는데, 이집 곱창은 어떻게 기름기를 뺐는지 담백하고 고소하다. 특히 대구막창과 야채곱창을 동시에 주문하면, 야채곱창의 매콤함과 대구막창의 고소함이 단짠단짠을 뛰어넘는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오늘, 배달 곱창과 함께 집에서 우아하게 와인 한 잔을 즐겨보자. 의외의 궁합에 한 잔이 한 병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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